안녕하세요, 세일러 래빗입니다.
오늘은 일본의 여성 작가, 야마모토 후미오에 대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야마모토 후미오(山本文雄)는 가나가와 현 요코하마시에서 태어난 일본의 여성 작가입니다.
제20회 요시가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제124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그녀이지만, 데뷔하기 전까지는 작가가 될 생각이 없었던 직장인이었다고 하는데요. 여성의 미묘한 심리를 섬세하고 예리하게 그려내는 그녀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만화를 좋아했던 어린시절
야마모토 후미오는 어린 시절에는 교과서에 실려있는 소설이나 과제 도서를 싫어했을 정도로 책과 담을 쌓았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좋아했으며 일본에서 유명한 소녀만화 잡지 『리본』부터 시작하여 당시에 유행하고 있었던 작품을 섭렵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초에 담임 선생님이 싫어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가벼운 등교거부를 했습니다. 집에서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의 『소공녀』를 읽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글자로 된 이야기를 읽고 재밌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관련글] 내면의 힘으로 불행을 극복한 소녀 이야기 【소공녀】→
만화가가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
학생 시절 야마모토 후미오의 꿈은 만화가였습니다. 머릿속에 스토리는 떠올랐지만 그녀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했습니다. 잡지 공모전에 투고하고 싶어도 그림을 못 그려서 투고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18살 때 자신이 만화가가 될 수 없다는 것에 인생을 포기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야마모토 후미오는 『WEB本の雑誌』 2009년 1월 28일자 인터뷰에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화가가 될 수 없다면 회사원이 되어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아서 평범하게 살자고 생각했어요. 제 인생은 만화가가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였죠.
글로 읽는 소녀만화를 쓰자
야마모토 후미오는 가나가와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그녀는 일기와 편지 쓰기를 좋아했지만 작가 지망생도 문학소녀도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녀의 나이 24살 때. 직장생활을 하던 중 부업이 하고 싶었던 그녀는 소녀만화는 그리지 못했지만 글로 읽는 소녀만화는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소녀소설이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야마모토 후미오는 코발트 노벨 대상에 응모했습니다. 1987년 『프리미엄 풀의 나날』이 코발트 노벨 대상 가작에 입선했습니다. 그녀는 수상을 하자마자 직장을 그만두었는데 직장에서 단편으로 상을 탄 것 정도로 작가가 될 수 있겠느냐며 만류했다고 하네요.
거의 같은 시기에 결혼을 하고 집필활동에 전념하면서 소녀소설을 중심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소녀소설에서 일반 소설로
야마모토 후미오는 1988년 첫 저서 『반짝반짝 별을 줄게』를 간행하고 나서 3년 동안 15권 정도의 소녀소설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그 즈음부터 소녀소설 시장이 축소될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작업 의뢰도 점점 줄어만 갔죠.
자신이 쓰고 싶었던 것과 독자가 원하는 것에 괴리감을 느꼈던 그녀는 소녀 소설이 아닌 다른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일반 소설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1992년 『파인애플의 행방』을 시작으로 일반 소설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너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다
일반 소설로 방향을 바꾼 후 야마모토 후미오는 『블루 혹은 블루』, 『울게 될 거야』를 발표하였으나 작품에 대한 반응은 좋았지만 소설이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다음 작품은 『너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다』였습니다. 그녀는 『너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다』가 잘 팔리지 않는다면 전업작가는 그만두고 재취업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랑과 결혼의 의미를 묻는 이 작품은 남녀노소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대성공을 거두었고 2003년에 TV 드라마화, 2017년에 무대에 상영되었습니다. 드라마는 2018년 나카타니 미키, 타마키 히로시 주연의 드라마로도 리메이크되었습니다.
1999년 『연애중독』으로 제20회 요시가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을, 2000년에는 프리터와 주부처럼 세간에서 무직으로 불리는 사람들을 그린 단편집 『플라나리아』로 제124회 나오키상을 수상했습니다.
재혼 생활과 우울증
야마모토 후미오는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겨 1년간의 별거생활을 거친 후 이혼했습니다.
2002년에 재혼을 했지만 재혼한 남편과는 별거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전 남편과 이혼하고 나서 우울증을 앓았다가 2003년에 우울증이 다시 재발하여 약 6년간 집필 활동을 쉬었습니다. 그녀의 나이 40살이었습니다.
야마모토 후미오 본인의 얘기로는 2004년 후반 정도에 우울증 증세가 가장 심했다고 합니다. 자살충동을 여러 번 느꼈고 증상이 심해져 요리나 청소를 못할 정도로 순서대로 뭔가를 하는 것을 잘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울증을 앓았을 당시 야마모토 후미오는 자신은 소설을 쓰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こころの耳』 2010년 11월 인터뷰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몇 년 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이상 쉬게 된다면 작가로서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중략) 소설을 쓰지 않는 나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게 문제였던 것 같아요. 지금은 소설을 쓰지 않아도 나 자신은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야마모토 후미오는 이때의 경험을 자전 에세이 『재혼생활-나의 우울증 일기-』에 담아내면서 복귀했습니다.
야마모토 후미오의 작품
한국어로 번역된 야마모토 후미오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지혼식 | 아카펠라 |
너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다 | 잠자는 라푼첼 |
울게 될 거야 | 여자 길을 걷다(낙화유수) |
블랙 티 | 결혼하고 싶어 |
내 나이 서른하나 | 플라나리아 |
절대 울지 않아 | 러브홀릭(연애중독) |
블루 혹은 블루 |
마치며
야마모토 후미오는 부모님이 주신 용돈을 전부 만화책을 사는 데 사용할 정도로 만화를 좋아하는 소녀였습니다.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의 『소공녀』를 통해 글자로 된 이야기의 재미를 알았지만 책보다는 만화책을 더 좋아했지요.
그림을 못 그려서 한 때 만화가의 꿈을 포기했던 그녀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그림이 아닌 글로 읽는 소녀만화를 쓰고 싶어서였습니다. 야마모토 후미오가 소녀소설에서 일반 소설로 작품 방향을 바꾼 건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가 계속 소녀소설에 머물러 있었다면 야마모토 후미오라는 이름과 그녀의 작품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야마모토 후미오의 명언을 소개하면서 이번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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