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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핀란드의 상징주의 여성 화가 베다 스테른샨츠

by 세일러래빗 2023.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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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42세의 나이로 너무 일찍 자신의 삶을 끝낸 한 명의 여성 화가가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베다 스테른샨츠. 핀란드의 상징주의 화가입니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핀란드의 상징주의 화가 베다 스테른샨츠에 대해 소개합니다. 

 

베다 스테른샨츠, 그림 마그누스 엥켈(Magnus Enckell)

베다 스테른샨츠(Beda Maria Stjernschantz)는 1867년 12월 10일 핀란드의 도시 포르부에서 태어났습니다. 

베다의 집 스테른샨츠가는 귀족 가문이었습니다. 베다의 아버지는 군 장교이자 고위 공무원이었으며, 핀란드 의회의 귀족 회의실의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다의 가족은 그렇게 부유하지 않았습니다.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소녀는 미술을 하기 위한 모든 비용을 자신이 감당해야 했지요. 

 

Girl Sitting (1892), 베다 스테른샨츠

베다는 1885년부터 1889년까지 헬싱키 미술 아카데미의 드로잉 스쿨에서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후에 핀란드의 화가 군나르 베른트손(Gunnar Berndtson) 밑에서 1889년부터 1891년까지 개인적으로 미술을 공부하게 됩니다.

 

베다 스테른샨츠, 사진 Daniel Nyblin

현실주의로 출발했던 베다의 작품 성향은 상징주의로 바뀌어갔습니다. 1891년 열렸던 베다의 데뷔 전시회와 파리 여행이 그 계기였습니다. 

1891년 가을. 핀란드의 표현주의 화가인 엘렌 테슬레프와 함께 여행을 떠났던 파리에서 베다는 상징주의에 매료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를 중심으로 상징주의 예술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었는데요. 베다는 특히 상징주의의 대표 화가인 피에르 퓌비 드 샤반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상징주의란? 상징주의 미술의 역사와 3가지 특징

안녕하세요, 세일러 래빗입니다. 저번 포스팅에서는 미국의 여성 예술가 앨리스 파이크 바니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에 상징주의적 요소를 다룬 화가였지요. [관련글] 미국의

sailor-star.tistory.com

 

파리의 칼라로스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며 당시의 많은 핀란드 예술가들처럼 그녀 또한 상징주의 작품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Irma (1895 - 1896), 베다 스테른샨츠

하지만 베다는 1년도 안 되어 핀란드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핀란드로 돌아와 마그누스 엥켈(Magnus Enckell)로부터 미술 지도를 받게 됩니다.

 

엥켈은 엘렌 테슬레프, 베다 스테른샨츠와 함께 군나르 베르트손 밑에서 공부하던 학생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군나르 베르트손의 자랑스러운 학생이었고 현재는 핀란드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상징주의 화가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엥켈은 베다에게 새로운 상징주의 흐름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엥켈과 베다는 상징주의 스타일과 예술의 근본적인 철학을 채택한 핀란드 최초의 예술가들이었습니다. 

Self-Portrait (1892), 베다 스테른샨츠

베다의 작품 활동은 1910년 그녀가 42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끝이 나게 됩니다. 

 

당시 베다의 작품은 높이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귀족 가문이라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내 재정적인 문제에 시달렸으며 작품 활동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Maija (1891), 베다 스테른샨츠

베다 스테른샨츠의 작품은 얼마 남아있지 않지만 그녀는 오늘날 핀란드 상징주의 운동의 선구자로서, 당시 시대의 선도적인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참고 및 그림 출처
https://fr.m.wikipedia.org/wiki/Beda_Stjernschantz
https://en.wikipedia.org/wiki/Beda_Stjernschantz
Wikimedia Commons 및 Artv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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